[ETC] 뉴턴은 주식으로 돈을 잃고, 헨델은 음악으로 역사를 남겼다 (고점매도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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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운드캣입니다!
여러분은 세계적인 천재도 주식 투자에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현대 과학의 기초를 다진 인물 중 한 명인 아이작 뉴턴.
복잡한 천체의 움직임을 수학으로 설명했던 그도 주식시장의 광풍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주식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영국 런던에서는 또 다른 인물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거장,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입니다.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이 말은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라고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만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1720년 영국을 휩쓴 남해회사 거품 사건. 이 사건은 뉴턴의 투자 실패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헨델이 활동했던 런던의 음악계와도 맞닿아 있죠.
그렇다면 한 사람은 투자 실패의 상징으로, 다른 한 사람은 음악사의 거장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당시 런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1720년, 영국을 집어삼킨 투자 열풍
18세기 초 영국은 금융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새로운 산업이나 기술이 등장하면 관련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곤 하듯, 당시 영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기업이 바로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였습니다.
1711년 설립된 남해회사는 영국 정부의 국가채무 문제와 남아메리카 무역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정부채무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투자자들의 폭발적 관심을 끌었죠.
문제는 회사의 실제 사업 가치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훨씬 빠르게 커졌다는 점입니다.
1720년 남해회사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당시 투자자들은 회사의 장밋빛 전망에 열광했고,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과열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 어디서 많이 본,,, >
당시 금융 기록에 따르면 남해회사 주가는 1720년 1월경 약 128파운드 수준에서 시작해 봄부터 급등했고,
여름 무렵(6~8월)에는 약 1000파운드 안팎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급락해 연말에는 100파운드 초반대로 떨어졌습니다.
주가가 오르니 사람들이 몰리고, 사람들이 몰리니 주가가 더 오르는 투기 광풍의 소용돌이였던 셈입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실적이나 가치를 따져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돈을 벌고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주변 사람들이 수익을 냈다는 소식이 들리고, 주가가 연일 상승하면 처음에는 신중했던 사람도 점점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이죠.
그렇게 투자자들의 기대는 점점 커졌고, 마침내 거품은 무너지고 맙니다.

이 사건은 훗날 남해회사 거품 사건(South Sea Bubble)이라는 이름으로 금융사의 대표적인 투기 광풍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이 광풍에 휘말린 사람 중에는 뜻밖에도 아이작 뉴턴이 있었습니다.
2.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했지만, 주가의 움직임은 예측하지 못한 뉴턴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
그는 고전역학의 기초를 세운 과학자이자 수학자이며, 당시 영국 조폐국장으로도 활동했습니다.
뉴턴은 투자와 전혀 무관한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여러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있었고, 남해회사 주식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뉴턴은 1720년 주가가 상승하던 초기에 남해회사 주식을 매도해 상당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주가가 계속 치솟자 다시 시장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뉴턴은 상당한 투자 손실을 입었습니다. 약 2만 파운드를 잃었다고 알려져 있죠.
(현재의 가치로 보면 약 50~70억 정도 되는 거액이라고 함, 더 클 수도)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뉴턴이 주식 투자 실패로 거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대 금융사 연구(오드런 리체슨 등)에 따르면 뉴턴이 전 재산을 날려 거지가 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뉴턴이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뉴턴이 남해회사 주식 투자에 실패한 뒤 했다고 알려진 말입니다.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뉴턴은 자연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설명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자연과 달랐습니다.
천체의 움직임에는 물리 법칙이 작용하지만, 주식시장에는 사람들의 기대와 공포, 욕심과 불안이 함께 작용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을 갖췄더라도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까지 정확히 계산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이 투자 실패가 뉴턴의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퇴색시키지는 않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조폐국장으로 일했고, 172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대의 중요한 인물로 남았습니다.
다만 이 사건은
'어떤 분야에서 천재라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도 반드시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라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물리학의 천재에게도 시장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셈이죠.
3. 뉴턴은 물렸는데 헨델은 거액의 이익을 거두었다고?
뉴턴이 남해회사 주식에 물려 눈물을 흘리던 바로 그 시대,
런던에서는 또 다른 인물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입니다.
헨델은 독일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음악적 경험을 쌓은 뒤, 런던에 정착해 작곡가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런던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고, 헨델은 이 흐름을 타고 음악계에서 입지를 넓혀 갔죠.

그런데 헨델에게 음악 말고도 흥미로운 투자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바로 남해회사 거품 사건 당시의 주식 투자입니다.
1720년, 영국 전체가 주식 투자 열풍에 휩싸였을 때 헨델 역시 그 소용돌이 한복판에 함께 있었습니다.
흔히 전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두 사람의 운명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남해회사 주식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헨델이 뉴턴과 다르게 남해회사 주식을 통해 이익을 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헨델 고점 매도 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헨델의 남해회사 주식 거래 기록에 따르면 그는 1715년경부터 남해회사 주식을 매입해 1719년경 처분해 이익을 남겼고 1720년 폭락 이후 저점에 다시 매수하는 등 투자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헨델이 주식에서 번 큰 돈으로
아카데미를 운영했다고 하는 '썰'도 있습니다.

왕립음악아카데미, 헨델의 음악 인생을 펼친 무대
하지만 이것도 사실은 아닙니다.
런던에서 이탈리아 오페라를 제작하고 공연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인 왕립음악아카데미(Royal Academy of Music)는
1719년 조지 1세의 후원과 영국 귀족들이 출자를 바탕으로 설립된 것이기 때문이죠.
헨델은 이곳에서 주요 작곡가로 활동하며 오페라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헨델이 남해회사에 투자했고, 주식 매도 시점에 왕립아카데미가 설립되어 그런 '썰'이 돈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영국 왕립음악아카데미는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1720년에는 그의 오페라 《라다미스토(Radamisto)》가 공연됐고,
이후에도 《줄리오 체사레》와 《로델린다》 등 여러 작품을 선보이며 런던 오페라계에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당시 오페라 사업은 지금의 대형 공연 산업과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뛰어난 가수와 연주자를 확보해야 했고, 공연장을 운영할 자금도 필요했으며,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야 했죠.
음악적 재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계는 아니었던 겁니다.
헨델은 작곡가로서의 역량뿐 아니라 이런 공연 산업의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활동을 이어 갔습니다.

남해회사 거품 사건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치던 시기에도 런던의 음악계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헨델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했고, 이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음악사의 거장으로 남았습니다.
뉴턴이 주식시장에서 인간 심리의 무서움을 경험했다면,
헨델은 적절한 저점 매수 및 익절 그리고 본업에 충실하면서
장기적인 성공을 만들어 간 셈입니다.
헨델의 진짜 투자 성공은 주식 계좌가 아니라 음악사에 남긴 작품들입니다.
4. 헨델의 음악은 무엇이 특별할까?
헨델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음악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이 《메시아(Messiah)》의 '할렐루야(Hallelujah)' 합창을 떠올리실 겁니다.
영화나 광고, 클래식 공연 등 다양한 곳에서 접할 수 있는 곡이죠.
웅장한 합창과 극적인 전개가 인상적이어서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비교적 친숙합니다.
하지만 헨델의 음악 세계는 《메시아》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훨씬 넓습니다.
그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관현악곡, 합창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을 남겼습니다.

런던 왕립오페라하우스와 헨델 관련 기관의 자료에서도
《메시아》, 《수상 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 오페라 《리날도》 등을 그의 대표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헨델의 음악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표 작품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① 《메시아(Messiah)》 — '할렐루야' 합창으로 유명한 오라토리오
1741년에 작곡된 《메시아》는 헨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 부활을 중심으로 한 성서 내용을 다루는 오라토리오입니다.
그렇다면 오라토리오는 무엇일까요?

쉽게 말해 독창자와 합창단, 오케스트라가 함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대규모 성악 작품입니다.
오페라와 달리 일반적으로 무대 연기나 의상, 무대 장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메시아》는 1742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초연됐으며, 이후 헨델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2부 마지막에 등장하는 '할렐루야' 합창은 압도적인 규모와 힘찬 음악적 전개로 유명합니다.
처음 듣는 사람도 합창이 만들어 내는 웅장함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죠.
② 《수상 음악(Water Music)》 — 왕을 위한 야외 음악
헨델의 또 다른 대표작은 《수상 음악》입니다.
1717년 영국 국왕 조지 1세가 템스강에서 배를 타고 이동할 때 연주할 음악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왕실 행사에 맞춰 준비한 특별 공연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당시의 연주 환경을 상상해 보면 조금 더 흥미롭습니다.
공연장은 실내 콘서트홀이 아니라 강 위의 배와 주변 공간이었습니다.
연주자들이 음악을 들려주는 가운데 배가 템스강을 따라 이동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으로 치면 야외 행사에 맞춘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까운 셈입니다.
《수상 음악》은 여러 악장으로 이루어진 관현악 모음곡으로, 춤곡의 리듬과 화려한 관악기 편성이 특징입니다.
헨델이 궁정 행사와 대중적인 청중을 위한 음악에서도 뛰어난 감각을 발휘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죠.
③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 불꽃놀이에 어울리는 웅장한 사운드
1749년에 작곡된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마무리한 엑스라샤펠 조약을 기념하는 런던의 불꽃놀이 행사와 관련해 만들어졌습니다.

헨델은 야외 행사에 어울리는 웅장한 관현악곡을 선보였고, 금관악기와 타악기를 활용해 강렬한 사운드를 만들어 냈습니다.
특히 작품의 첫 악장은 힘찬 리듬과 화려한 금관악기 연주가 돋보입니다.
현대의 영화 음악이나 게임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대규모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매력을 좋아한다면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④ 오페라 《리날도(Rinaldo)》 -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
헨델의 오페라 작품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중 《리날도》는 1711년 런던에서 공연되며 큰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는 유명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등장합니다.
느리고 아름다운 선율이 인상적인 곡으로, 오페라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 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헨델은 이 작품을 통해 런던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이후 오페라 작곡가로서 중요한 입지를 다졌습니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복잡한 기교를 보여 주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인물의 감정과 극적인 상황을 선율로 표현하고, 가수의 목소리가 지닌 매력을 효과적으로 살렸죠.
바로 이런 능력이 헨델을 당대의 인기 작곡가로 만든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시중에 알려진 바와 같이 헨델은 금융시장의 흐름을 완벽하게 예측한 투자자는 아닙니다.
적절한 자산관리 + 본업에 충실 음악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작곡가입니다.
6. 뉴턴과 헨델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투자와 시장의 움직임은 그들의 업적과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줍니다.

첫째, 어떤 분야의 전문성이 다른 분야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과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읽는 능력은 서로 다릅니다.

둘째, 주변의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는 판단력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주가가 계속 오르면 더 오를 것처럼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셋째, 투자는 안정적으로, 본업에 충실해야 합니다.
주식시장의 가격은 짧은 시간에도 크게 변하지만, 헨델의 음악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연주되고 있습니다.
시장은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급격히 움직일 수 있지만,
오랫동안 사랑받는 예술 작품은 시대가 바뀌어도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마무리: 주가는 무너져도 음악은 남는다
1720년 남해회사 거품 사건은 금융 역사상 가장 극적인 투기 광풍 중 하나이며,
뉴턴의 투자 실패담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인간 본성의 취약함을 경고합니다.

하지만 뉴턴을 주식 투자에 실패한 사람으로만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과학적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헨델 역시 주식에 투자했고 성공했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음악적 업적을 쌓았습니다.

어쩌면 이 두 인물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뉴턴의 투자 실패는 인간의 판단과 욕망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헨델의 음악은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창작의 힘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눈앞의 상승세를 쫒는 것과 오랫동안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과연 무엇이 더 오래 남을까요?
주식시장의 거품은 꺼질 수 있지만, 좋은 음악은 수백 년이 지나도 다시 연주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헨델의 《메시아》나 《수상 음악》을 한 번 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알고 들으면, 익숙했던 클래식 음악도 조금은 다르게 다가올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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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감상할 때는 단순히 유명한 선율을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악기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만들어 내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수백 년 전의 음악이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는 이유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느껴 볼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사운드캣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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