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전설의 악플(?)러 한국의 인디 밴드의 전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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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운드캣입니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커뮤니티에서 키보드 배틀을 벌이다가 "나 사실 유명 밴드 리더인데?"라는 허풍을 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렉카~~~ 뉴스~~
불과 몇 시간 만에 아이피가 추적되고, 과거 글이 모두 털리며, 사이버 렉카 유튜버들의 박제 영상이 올라와 영원히 인터넷의 웃음거리로 남을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갓 보급되던 1990년대 중반, 낭만과 허세가 넘쳐나던 PC통신 시절에는 전혀 다른 결말이 펼쳐졌습니다.
남의 음악을 헐뜯던 방구석 악플러가 인터넷 싸움에서 밀리기 싫어 던진 단 한 줄의 순도 100% 거짓말.

그 무모한 허세가 굴러가 한국 인디 음악사의 '언니네이발관'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거창한 록스타들과 철없는 악플러,
그리고 90년대라는 시대가 합작해 낸 한국 대중음악사 최고의 황당한 실화극을 풀어볼까 합니다.
한국 가요계의 르네상스 시기라 불리는 1990년대

저는 이 세대가 아니라서 잘...
1990년대 PC통신 하이텔의 음악 게시판은 자칭 음악 마니아라는 방구석 평론가들이 계급장 떼고 붙던 야생이었습니다.

그 시절 한국 가요계의 통곡의 벽은 신해철이 이끌던 밴드 넥스트(N.EX.T)였습니다.
가죽 재킷을 입고 철학적 가사와 10분짜리 신디사이저 솔로를 뿜어대며, 우주와 인류의 구원을 노래하던 '대왕님'들이었죠.

하지만 그 시절 방구석 키배꾼 이석원의 눈에는 그 모든 게 그저 오글거리는 '웅장병'이자 시대착오적인 록스타 놀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넥스트의 거창한 콘셉트 앨범과 특유의 뽕짝 록 사운드를 향해 매서운 독설을 쏟아냈습니다.
거대한 록스타들의 지독하게 좁았던 소갈딱지
웃긴 건, 인류를 구원하겠다며 온갖 멋은 다 잡던 넥스트 팬들과 그 주변 수호신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까놓고 말해, 당대 최고 인기 밴드와 그 추종자들이 방구석에서 모니터나 두드리던 무명 악플러 한 명의 야지에 지독하게 '긁힌' 겁니다.

스파츠(Spatz)라는 작가 분의 만화
"록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다"던 거창한 명분에 비해 그들의 속알딱지는 참으로 소심했습니다.

“남의 음악 까기 전에 너는 악기나 잡을 줄 아냐?”, “음악 만들 줄도 모르는 놈이 어디서 넥스트에 비비냐”라며
수백 개의 공격성 댓글로 떼거리(?) 집단지성을 발휘했습니다.
웅장한 프로그레시브 록을 하던 거장들이 방구석 키배꾼의 팩트 폭격 한 방에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꼴이었습니다.

스파츠(Spatz)라는 작가 분의 만화
여기서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이석원은 인생을 바꿀 세기의 순도 100% 거짓말을 던집니다.
"나 이미 모던록 밴드 하고 있다. 이름은 '언니네이발관'이다."

(밴드 이름조차 학창 시절 비디오 가게 구석에서 본 일본 에로 영화 제목에서 따온 것이었습니다.)

드럼 6개월 차가 최고 베테랑? 대환장 가짜 밴드의 결성
문제는 이 얼토당토않은 허풍이 당시 PC통신의 좁은 네트워크 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스노우볼로 굴러갔다는 점입니다.

소문은 퍼지고 퍼져 당대 최고 권위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한국 모던록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망주'로 언니네이발관이 언급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전영혁 DJ의 목소리로 가짜 밴드 이름이 전국에 송출되자, 이석원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결국 이석원은 거짓말을 메우기 위해 PC통신 동호회에서 함께 노가리나 까던 사람들을 긴급 소집합니다.

류한길 / 류기덕 / 유철상
그렇게 모인 초기 멤버가 이석원(보컬/기타), 류한길(키보드), 류기덕(베이스), 유철상(드럼) 4인방이었습니다.
이 멤버 구성의 실체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대환장 파티였습니다.

스파츠(Spatz)라는 작가 분의 만화
넷 다 악기라고는 잡아본 적도 없는 생초보들이었고,
드러머 유철상도 드럼을 잘 쳤던게 아니라 이석원이 팔이 길어서 데려온 것이었습니다.

악기 코드 하나 짚을 줄 모르는 이석원이 리더랍시고 입으로 "웅- 짱- 짠" 소리를 내며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멤버들은 그게 뭔 소리인지 몰라 서로 멍하게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은인의 등장: 윤병주의 특훈으로 완성된 곡들

이 대책 없는 가짜 밴드를 진짜 밴드의 형체로 만들어준 구원투수가 나타나니, 바로 당시 노이즈가든의 기타리스트 윤병주였습니다.
이들의 기막힌 사정을 접한 윤병주가 자원봉사에 가까운 느낌으로 지옥의 특훈을 시켜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파츠(Spatz)라는 작가 분의 만화
윤병주는 코드 잡는 법도 모르던 초보자들에게 악기 잡는 법부터 가르치고,
이석원이 입으로 중얼거리는 조악한 중얼거림을 제대로 된 음악적 구조로 가공해 주었습니다.

윤병주의 피나는 특훈과 쥐어짜는 조련이 없었다면 이석원의 허풍은 1집 앨범은커녕 곡 하나 완성하지 못하고 끝났을 겁니다.
(훗날 밴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정대욱 같은 실력파 뮤지션들이 합류해 음악적 완성도를 더하게 됩니다.)
명반의 탈을 쓴 실체: 언니네이발관 1집의 허술함

그렇게 신촌과 홍대의 꿉꿉한 지하 연습실에서 피나는 똥쇼와 윤병주의 특훈을 거쳐
1996년에 발표된 언니네이발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는 훗날 한국 인디의 명반으로 추앙받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운드를 냉정하게 까놓고 보면 기가 차는 수준이었습니다.

넥스트의 화려한 테크닉과 웅장함을 "폼만 잡는다"고 디스하던 악플러가, 정작 본인 앨범에서는 음정은 나가고 박자는 계속 밀리는 보컬을 선보였습니다.
기타 리프는 학원 3개월 차가 칠 법한 단순한 코드의 연속이었고,
허접한 연주력은 '로파이(Lo-Fi) 감성'과 자극적인 디스토션 이펙터 뒤로 얼렁뚱땅 숨겼습니다.

남의 완벽주의는 비웃었으면서 정작 본인은 허접한 실력을 인디 감성이라는 포장지로 그럴싸하게 덮어버린 희대의 내로남불이었던 셈입니다.
시대를 너무 잘 타고난 악플러와 록스타의 운빨

물론 훗날 이석원이 뼈를 깎는 집착과 완벽주의로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같은 진짜 명반을 만들어낸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옥으로 밀어 넣은 광기는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서사의 핵심은 90년대라는 시대가 준 엄청난 운에 있었습니다.

만약 이석원이 요즘 같은 시대에 유명한 밴드를 까며 이런 허풍을 쳤다면 어땠을까요?
밴드 이름을 말한 지 3시간 만에 에x코리아나 디시x사이드에 "언니네이발관 이석원 신상 털렸다.
드럼 6개월 차가 제일 베테랑인 가짜 밴드임"이라는 폭로글이 올라왔을 겁니다.

곧이어 사이버 렉카 유튜버들이 등판해 [충격] 넥스트 까던 방구석 악플러의 가짜 밴드 자작극 실체 (feat. 윤병주 특훈 고혈 쥐어짜기) 같은 썸네일로 영상을 도배했을 것이고, 넥스트 팬덤의 화력에 밀려 첫 라이브를 하기도 전에 '허세 찌질이'로 매장당했을 겁니다.
무대에 서보기도 전에 인생이 조리돌림당하며 끝났을 게 보듯 뻔합니다.
정보가 더디게 돌고, 아마추어의 허접함조차 '홍대 앞 청춘의 낭만과 B급 감성'으로 포장해 주던 90년대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별것도 아닌 키배꾼 한 명에게 긁혀서 대거 덤벼들었던 록스타들과,
그 오기 하나로 드럼 6개월 차를 베테랑 삼아 전설이 되어버린 악플러가 만든, 두 번 다시는 나올 수 없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희대의 운빨 잔혹사입니다.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 모든 비밀이 폭로되고, 자작극과 어설픔은 순식간에 매장당하는 팍팍한 시대입니다.

그래서인지 키보드 싸움에서 밀리기 싫어 쳤던 순도 100% 거짓말이 한국 대중음악사의 전설이 되어버린 이 황당한 잔혹사가,
오늘따라 유독 엉뚱하고도 그립게 다가오네요.
다음에 더 재미있고 유익한 음악 비하인드 스토리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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