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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유일한 뮤지션

사운드캣영업본부
22시간 56분전 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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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운드캣입니다! ✨

1980년대 전 세계 음악계는 그야말로 두 천재의 손안에 있었습니다.

전무후무한 메가 히트작 [Thriller]로 전 세계를 휩쓴 마이클 잭슨,

그리고 영화와 음악을 동시에 재패한 [Purple Rain]의 프린스가 그 주인공이죠.

당대 최고의 라이벌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두 사람.

만약 이 두 천재가 한 무대에서 댄스 배틀을 벌이거나, 한 곡에서 목소리를 섞었다면 어땠을까요?

사실 팝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 될 뻔한 이 역대급 콜라보는 실제로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프린스의 단칼 거절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과연 이들 사이에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을까요?

 

CHAPTER 1. 전 세계를 뒤흔든 폭풍, 그 뒤에 가려진 '황제'의 거대한 압박감

시간을 잠시 1986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의 위상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1982년에 발매한 앨범 [Thriller]는 음악계에 있어 그야말로 핵탄두나 다름없는 파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온종일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MTV는 그의 뮤직비디오로 도배되었으며, 전 세계가 그의 문워크에 열광했죠.

[Thriller]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라는 전무후무한 타이틀을 거머쥐며 잭슨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대성공의 달콤함 뒤에는 잔인할 정도의 압박감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전작이 너무나도 위대했기에, 마이클 잭슨은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밤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대중과 평단의 기대치는 이미 우주 끝까지 치솟아 있었고,

"마이클 잭슨도 이제 한계가 아닐까?"라는 시기 어린 시선들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잭슨은 전작의 대성공을 뛰어넘겠다는 야심 찬 포부 아래,

다음 프로젝트인 [Bad] 앨범의 타이틀 트랙을 구상하며 컴백 준비에 엄청난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앨범의 첫인상을 결정지을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Bad>의 뼈대를 완성한 잭슨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대중의 턱을 짜르르하게 만들 '신박한 치트키'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최고의 라이벌을 데려와 듀엣을 하자."

그렇게 잭슨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이 바로,

영화와 음악을 동시에 재패하며 [Purple Rain] 신드롬을 일으켰던 또 하나의 슈퍼스타, 프린스였습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이 구상한 그림은 단순한 보컬 듀엣이 아니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라는 거장 감독을 섭외해 한 편의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를 찍고,

그 안에서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가 직접 웅장한 댄스 배틀을 펼치는 구도를 원했습니다.

그야말로 음악계의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혹은 '배트맨 vs 슈퍼맨' 같은 세기의 라이벌 매치였죠.

시도 자체만으로도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이 기획을 들고,

잭슨은 즉시 프린스를 자신의 스튜디오로 초대해 완성된 곡을 들려주며 정중하게 동반 작업을 제안했습니다.

이미 마이클 잭슨은 비틀스의 Paul McCartney와도 성공적인 협업을 이뤄낸 바 있었습니다.

1982년 발표된 잭슨의 앨범 Thriller에 수록된 The Girl Is Mine,

그리고 1983년 매카트니의 앨범 Pipes of Peace에 수록된 Say Say Say는 모두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Thriller의 대표곡 Beat It에는 Eddie Van Halen이 역사적인 기타 솔로를 연주했고, Steve Lukather 역시 세션 에 참여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마이클 잭슨과의 협업은 단순한 게스트 출연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그의 작품에 참여했으며, 이는 곧 그 뮤지션의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CHAPTER 2. "네 엉덩이는 내 거야" 가사 한 줄이 불러온 파국 

스튜디오의 공기는 팽팽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들려주는 <Bad>의 데모 음원을 들으며 프린스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죠.

곡의 인트로부터 흘러나오는 광활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리드미컬한 베이스 라인은 누가 들어도 명곡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린스는 곡의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마자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노래의 포문을 여는 첫 가사가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입니다.

"Your butt is mine" (직역: 네 엉덩이는 내 거야 / 의역: 넌 내 손바닥 안이야)

프린스는 이 가사를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단칼에 거절 의사를 밝힙니다.

훗날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크리스 록과의 인터뷰에서 프린스가 직접 밝힌 거절의 이유는 아주 확고하면서도 다소 엉뚱했습니다. 

"이봐, 마이클. 네가 나한테 와서 '네 엉덩이는 내 거야'라고 부를 일도 없고, 내가 너한테 가서 그 가사를 부를 일도 없잖아.

그렇다면 우리가 같이 무대에 섰을 때, 누가 누구한테 이 민망한 가사를 부른단 말이지? 그러니까 이 노래는 성사될 수가 없어."

프린스의 성향을 아는 이들에게 이 답변은 매우 프린스다운, 쿨하면서도 자존심 강한 핑계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가사의 어색함을 핑계 댔지만, 그 무대 뒤에 숨겨진 천재들의 진짜 속사정은 조금 더 복잡했습니다.

 거절 뒤에 숨겨진 천재들의 진짜 속사정

역사적인 협업이 무산된 진짜 원인에 대해,

당시 두 사람과 모두 깊게 작업했던 전설적인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는 또 다른 흥미로운 증언을 남겼습니다.

프린스는 잭슨의 스튜디오를 떠나며 퀸시 존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곡은 이미 완벽해. 내가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무조건 빌보드 1위를 하고도 남을 노래야. 내가 숟가락을 얹을 자리가 없어."

즉, 프린스는 아티스트로서 곡의 진가를 단번에 알아봤던 것입니다.

자신이 들어가서 파트를 나누는 것보다, 마이클 잭슨이 혼자 온전히 이끌어갈 때 완벽해지는 곡이라는 걸 직감한 것이죠.

동시에 '독종'이자 '절대적 아웃사이더'였던 프린스의 거대한 자존심도 작용했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라 하더라도, 프린스 역시 같은 시대를 지배한 독보적인 슈퍼스타였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대중성과 스타성, 그리고 아이돌적인 카리스마를 앞세워 팝 음악의 정점을 찍은 인물이라면,

프린스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 키보디스트였으며

대부분의 곡을 직접 쓰고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강한 아티스트적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프린스의 입장에서 보면, 마이클 잭슨이 주도하는 뮤직비디오 안에서 단순히 라이벌이나 조연 역할로 등장하며

그의 컴백을 돕는 들러리로 소비되는 것은 달갑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프린스는 누군가의 무대에 등장하는 게스트가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독립적인 창작자이자 슈퍼스타였기 때문입니다.

프린스는 마이클 잭슨의 경쟁자였지, 그의 서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거절에는 자존심이라기보다 동등한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CHAPTER 3. 철저한 기획 천재 마이클 잭슨 vs 혼자서 모든 걸 지배하는 올라운더 프린스 

종종 대중들은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를 단순한 라이벌로 묶곤 하지만,두 사람의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깊게 파고들면

프린스가 가진 순수 음악가로서의 역량이 마이클 잭슨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최고의 프로듀서(퀸시 존스 등), 최고의 작곡가, 최고의 안무가들과 협업하여 세련된

'종합 대중 예술'을 창조해 내는 철저한 기획형 천재였다면,

프린스는 그 모든 과정을 혼자서 지배해 버리는 독고다이형 올라운더 아티스트였습니다.

실제로 프린스의 프로필을 찾아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의 디테일이 쏟아집니다.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까지... 앨범에 들어가는 악기를 혼자 다 연주한다고?"

거짓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프린스는 데뷔 앨범에서 무려 27가지의 악기를 혼자서 직접 연주하며 레코딩을 끝마쳤습니다.

그는 단순히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일렉트릭 기타 부문에서는 세계 역대 탑클래스 기타리스트를 꼽을 때 반드시 이름을 올리는 거장이었고,

건반과 드럼, 베이스 연주 역시 세션 연주자들을 가르칠 수준이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거대한 자본과 최고의 팀을 꾸려 완벽한 음악적 협업을 진행할 때,

프린스는 그냥 방구석 스튜디오에 혼자 박혀 드럼을 치고, 그 위에 베이스를 얹고, 건반과 기타를 순차적으로 혼자 연주해 쌓아 올리며

시대를 앞서간 펑크(Funk)와 뉴웨이브 사운드를 뚝딱 창조해 낸 것입니다.

 

음악의 대중성과 상업적 파급력은 마이클 잭슨이 앞섰을지 몰라도, 아티스트로서의 음악적 주도권, 기술적 깊이,

그리고 스펙트럼의 넓이 면에서는 프린스가 마이클 잭슨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순수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CHAPTER 4. 시스템을 거부한 절대적 아티스트의 반골 기질 

이러한 완벽한 음악적 자립심을 가졌기에,

프린스는 대형 기획사나 거대 자본, 혹은 타인이 짜놓은 기획과 판에 자신을 맞춰 넣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습니다.

철저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정점에서 움직였던 마이클 잭슨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행보였죠.

이러한 프린스의 타협 없는 반골 기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985년에 있었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선 프로젝트,

〈We Are the World〉 불참 사건입니다.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는 프린스를 위해 잭슨의 파트 바로 뒤에 독창 솔로 라인을 비워두고 직접 전화까지 걸어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프린스는

 

"모든 스타가 에고(Ego)를 내려놓고 한 공간에 모여 노래한다는 취지보다,

내 음악적 통제권과 독립성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

며 끝내 불참했습니다.

대신 나름의 리스펙을 담아 앨범 공식 수록곡으로 자신의 개인 트랙인

<4 the Tears in Your Eyes>를 헌정하며 아티스트로서의 의리만 지켰죠. 

 

마이클 잭슨의 제안을 두 번이나 거절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걷던 프린스는,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1995년에 이르러 〈We Are the World〉라는 곡과 기묘한 무대 위에서 다시 재회하게 됩니다.

바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에서 열린 곡의 발매 10주년 기념 합동 무대였습니다.

하지만 프린스는 이번에도 대중과 시스템의 뜻대로 순순히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무대 중앙에 선 것 역시 본인의 강력한 의지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그림을 원했던 방송국 측의 집요한 요구에 마지못해 응해준 것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실내 무대임에도 새까만 선글라스를 낀 채, 입에는 사탕 하나를 껌처럼 질겅질겅 물고 끝까지 입을 꾹 닫았습니다.

주변의 모든 스타가 감격에 겨워 열창하는 와중에도 혼자 냉소적인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죠.

그는 왜 이렇게 시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을까요?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면 뺨에 아주 선명하게 'SLAVE(노예)'라는 단어가 적혀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팝스타가 왜 자신의 얼굴에 낙서 같은 글자를 쓰고 방송에 나왔을까요? 

 

여기에는 프린스의 눈물겨운 음악적 투쟁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프린스는 거대 음반사인 워너브라더스와 '음악 권리 및 소유권'을 두고 피 터지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음반사가 계약을 빌미로 자신이 밤을 새워 만든 음악의 마스터 테이프 소유권을 통째로 가져가고,

심지어 '프린스'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는 것마저 제약하자 분노한 것이죠.

결국 그는 "내 음악을 내 마음대로 발매하지 못하게 하는 거대 음반사의 노예(SLAVE)나 다름없다"라는 뜻으로

뺨에 글씨를 새긴 채 모든 공식 석상과 방송에 출연하며 눈물겨운 시위를 벌였습니다.

심지어 본명인 '프린스'를 버리고 자신을 상징하는 기묘한 '기호(Love Symbol)'로 이름을 바꿔 부르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자본권력에 온몸으로 저항한 셈입니다.

이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합동 무대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프로듀서 퀸시 존스가 인자한 미소와 함께 프린스의 입가에 마이크를 슥 대주며 한 소절을 권했습니다.

보통의 아티스트라면 대선배의 체면을 봐서라도 노래를 불렀겠지만, 프린스는 달랐습니다.

새까만 선글라스를 낀 채,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마이크 앞에 툭 내밀며 퀸시 존스를 당황하게 만드는 희대의 장난을 칩니다! 

"자본과 시스템이 강요하고 억압하는 무대 위에서는 단 한 소절의 노래도 부르지 않겠다"라는,

아티스트로서의 절대적인 신념과 지독하리만치 멋진 고집이 빛난 순간이었습니다.

거대 권력 앞에서도 자신의 에고와 음악적 순수성을 절대 굽히지 않는 이 꼿꼿한 면모야말로,

기획사가 차려준 밥상 위에서 춤추던 여타 스타들과 프린스를 완벽하게 차별화하는 위대한 도발이었습니다.

CHAPTER 5. 무대를 찢어버린 찰나의 공존, 그리고 남겨진 기록 

철저하게 계산된 기획과 시스템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함을 추구했던 마이클 잭슨,

그리고 시스템을 비웃으며 스스로 음악 자체가 되었던 프린스.

이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던 두 천재가 카메라 앞에서 유일하게 흔적을 남겼던 전설적인 순간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1983년, 두 사람의 음악적 뿌리이자 펑크 음악의 대부였던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라이브 콘서트 무대였습니다.

아래의 유서 깊은 실제 영상을 통해 두 사람의 날 선 에너지와,

'

왜 프린스가 '무대 위의 야수'이자 '마이클 잭슨을 압도하는 천재'로 불리는지 그 이유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  

 

먼저 무대에 오른 마이클 잭슨은 특유의 세련된 보컬과 절제된 문워크를 선보였습니다.

아주 정석적이고 완벽한 '황제'의 품격이었죠.

하지만 뒤이어 객석에서 소환된 프린스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 판도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프린스는 거구의 보디가드 어깨 위에 올라타 등장하더니,

무대에 오르자마자 상의를 거침없이 탈의하고 일렉트릭 기타를 빼앗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들린 듯한 기타 속주와 전매특허인 야생마 같은 고음 샤우팅으로 무대를 완전히 장악해 버렸습니다.

스탠딩 마이크를 자유자재로 쓰러뜨리고 복원하며 관객을 선동하는 프린스의 카리스마는,

철저히 계산되고 다듬어진 마이클 잭슨의 퍼포먼스와는 차원이 다른 '날 것 그대로의 천재성'이 무엇인지 증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프린스가 무대 위에서 거친 에너지를 뿜어내며 폭주하는 동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임스 브라운의 바로 옆자리에 당당하게 서 있던 마이클 잭슨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것이 라이벌에 대한 의도적인 거리두기였는지, 혹은 동선상의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프린스를 무대 위로 불러내도록 제임스 브라운에게 귀띔한 사람이

다름 아닌 마이클 잭슨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묘한 여운이 남는 대목입니다.

잭슨은 자신이 보여줄 몫을 다했으니,

라이벌인 프린스가 온전히 주목받을 수 있도록 한발 물러나 자리를 비켜준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장 유력합니다.

비록 카메라는 두 천재를 한 화면에 동시에 가두지 못했지만,

이 영상은 두 사람의 천재적인 에너지가 가장 가깝게 충돌하고 공존했던 역사상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EPILOGUE. 시스템을 뛰어넘어 영원한 전설이 된 이름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2009년 마이클 잭슨이,

그리고 2016년 프린스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며 두 거장의 라이벌전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철저한 기획력과 대중성, 그리고 완벽한 엔터테인먼트로 팝의 시대를 열었던 마이클 잭슨의 업적도 위대하지만,

작사, 작곡, 편곡에 수십 가지 악기 연주까지 홀로 해내며 시스템의 통제를 거부했던

프린스의 순수 아티스트적인 면모와 장인 정신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음악계에서 더욱 거대하고 위대하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자본이 짜놓은 판의 들러리가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음악 그 자체가 되었던 독종 천재, 프린스.

여러분은 마이클 잭슨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기획 무대와

프린스의 날 것 그대로 폭발하는 올라운더 천재성 중 어떤 아티스트의 스타일에 더 마음이 이끌리시나요?

다음에 더 재미있고 유익한 음악 비하인드 스토리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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